서머하우젠에서 만난 따뜻한 인연과 배려 깊은 친구들,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법'에 대한 조용한 깨달음. 중세 마을의 향기와 함께한 감동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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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시작, 일세의 한마디
“내일은 우리도 서머하우젠으로 가기로 했어요. 1박 2일로.”
일세가 어젯밤 이렇게 말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어요.
"오, 정말요? 너무 재밌겠어요."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감동의 물결이 잔잔히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울리의 또 다른 친구인 씨기(Sigi)와 그의 아내 르나테(Renate)가 살고 있는 서머하우젠(Sommerhausen).
스티븐은 원래 씨기와 르나테를 1992년부터 알고 있었고, 저도 2014년에 안면을 튼 사이였어요.
이날 우리는 그들을 방문하러 그곳으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피터와 일세, 그리고 피아와 그의 여자 친구 마리가
우리와 함께 1박을 하며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라는 거였어요.
이미 호텔까지 예약을 마쳤다는 이들의 말에, 이토록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나 싶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서머하우젠에서의 첫 만남
오후 서너 시쯤 도착한 서머하우젠. 씨기 부부의 집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나눈 뒤, 마을을 둘러보는 산책에 나섰습니다.
씨기는 은퇴 후 ‘나이트 워치맨(Night Watchman)’으로 일하고 계신 분이에요.
밤마다 관광객을 데리고 마을을 걸으며 이야기해주는 마을 해설사이자, 밤의 수호자 같은 존재지요.
오늘은 그가 근무하는 날이 아니었지만, 특별히 우리를 위해 4시쯤부터 마을 안내에 나서 주었어요.
저녁이 아닌 낮시간이라 긴 망토와 선장 모자, 창처럼 생긴 지팡이, 그리고 손등불까지 갖춘 모습이 아니라
낮시간 복장을 하고 나섰어요.
씨기와 르나테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고, 스티븐은 독일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간신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독일어를 전혀 몰라 씨기와 르나테와는 소통이 매우 어려운 편이었지요.
감동의 통역 서비스
마을 안내는 물론 독일어로 진행되었습니다. 독일어를 거의 알지 못하는 저에게는 그야말로 ‘외계어’였지요.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저는 설명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피터, 일세, 피아가 곁에 다가와 처음부터 끝까지 통역을 해주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본인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을 텐데도, 저희를 위해 끊임없이 설명을 이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저라면 저 듣기에 바빠서 남을 배려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들은 가끔씩 통역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며 저와 스티븐을 전담 마크하며 끊임없이 통역을 해주는 것이었어요.
단순히 친절함 이상의 진심이 느껴졌고, 세심한 배려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사소함 속의 배려, 그리고 배움
함께 보낸 이틀 동안, 이 사람들은 늘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필요한 건 없는지 자연스럽게 살펴주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스티븐이 씨기의 복장을 입어보며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도,
집으로 돌아온 후 바로 ‘나이트 워치맨’ 모양의 독일 호두까기 인형을 샀던 것도, 이런 따뜻한 경험이 주는 여운 덕분이었겠지요.
그동안 저는 남편과 시누이, 그리고 미국인 친구들의 배려 깊은 태도를 보며 놀랐던 적이 많았는데요.
이번 여행을 통해 그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바로 유럽 사람들, 그리고 그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은 이민자들 말이지요. 이들이 원조아니겠어요?
그러니 이 배려와 따뜻함도 미국인들보다 훨씬 더 세심한 'another level '의 따뜻함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제에게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삶. 그들의 행동을 보며 저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또 배우게 되었습니다.
진짜 여행이 주는 것
서머하우젠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관광 이상의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눈 마음. 그 진심 어린 배려와 다정한 시선 속에서,
저는 진짜 ‘여행의 의미’를 다시 느꼈습니다.
작은 중세 마을의 조용한 저녁. 씨기의 등불처럼, 그날의 기억도 제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밝혀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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