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한 올드타운 골목을 걷고, 돌길 위에 앉아 먹는 신선한 그리스 샐러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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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섬에서는 걷는 게 여행입니다
로도스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바닥이 다르다!
유럽 곳곳을 여행하다보면 운치있게 깔려진 돌길이 인상적이죠?
저는 그런 돌길을 걷는 것이 그렇게 좋아요.
그런데 이곳은 납작한 돌대신 같은 크기의 자갈들을 뾰족하게 박아 넣은 특이한 도로였어요.
그래서 생긴 문제—수트케이스를 끌기가 정말 힘들어요.
바퀴에서 나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던지요.
하지만 그조차도 이 도시의 매력처럼 느껴졌답니다.
우리가 묵었던 로도스의 숙소
저희는 올드타운 한가운데,
작고 오래된 골목 안의 숙소를 선택했어요.
외관은 고풍스러웠지만,
내부는 리노베이션이 잘 되어 있어 아주 쾌적했습니다.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 운영 숙소였고,
2층에 방 3개 정도만 있는 아주 작은 호텔이었지요.
욕실은 좁고 길쭉했지만,
중세 느낌이 가득한 골목과 출입문 덕분에
그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설레는 마음이 들었어요.
올드타운의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시간 감각을 잃게 됩니다.
커브를 돌면 나타나는 돌계단, 고양이가 앉아 졸고 있는 창가, 그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른 돌담...
어느 순간엔 ‘지금이 몇 세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곳은 가이드북을 따라가며 ‘명소’를 찍는 여행보다는, 천천히 길을 잃는 시간이 더 어울리는 곳이랍니다.
TIP:
공항에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올드타운으로 향하면,
성 입구에서 하차하게 됩니다. (버스의 경우 좀 먼 곳에 하차)
올드타운은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니,
짐은 직접 끌고 들어가야 해요.
처음에는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올드 타운 지도를 미리 저장해 두는 걸 추천드립니다!
로도스 올드타운, 살아있는 박물관
로도스 섬의 핵심은 단연 올드타운입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중세 십자군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어요.
로도스의 올드타운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기원전에는 미노아 문명이 자리를 잡았고, 도리아인들이 섬의 도시들을 세운 후에는 페르시아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을 거쳐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죠.
중세에 접어들며 가장 두드러지는 시대는 바로 14세기—성 요한 기사단(Knights of St. John)이 이 섬을 본거지로 삼았던 시기입니다.
이들은 로도스를 중세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잇는 방어 거점으로 삼고, 거대한 성곽과 병원, 수도원을 건설하며 오늘날 우리가 걷는 도시의 틀을 남겼습니다.
기원전부터
- 미노스인
- 도리아인
- 페르시아 제국
- 알렉산더 대왕
- 동로마 제국
- 그리고 오스만 제국까지
수많은 제국들이 지나간 곳.
지금도 터키는 배로 한 시간 거리라 문화적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요.
중세 성과 십자군의 흔적
올드타운 중심에는
십자군이 집결했던 거대한 중세 성이 있습니다.
성 주변에는
각국의 십자군 흔적이 남은 건물들과 조각들,
그리고 허물어진 유적들이 조용히 남아 있었어요.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고풍스러운 아치형 창문,
무너진 벽돌 담장 사이로
진짜 역사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십자군의 요새, 로도스 성의 비밀
중세의 로도스는 단순한 아름다운 섬이 아니었습니다.
14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축출된 **성 요한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은 자신들의 새로운 거점을 찾다가 이곳 로도스로 옮겨옵니다.
당시 로도스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지요—지중해 동부,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잇는 관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사단은 섬 전체를 요새화하며 철저하게 방어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로도스 성(Palace of the Grand Master)**입니다.
이 성은 기사단 총장이 거주했던 궁전이자, 병원과 무기고, 행정 중심지 역할까지 맡았던 중세 요새 도시의 심장이었어요.
성은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에는 거대한 문과 해자를 지나야만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성 내부의 벽과 바닥은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으며, 각국에서 온 십자군 기사들의 문장과 상징이 곳곳에 새겨져 있지요.
살아 있는 흔적들
오늘날에도 이 성을 걷다 보면, 단지 관광지가 아닌 전쟁과 신념, 종교가 맞부딪혔던 세계사의 교차로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특히 성 주변의 좁은 골목은 과거 각국의 기사단—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이 각각 거주했던 ‘기사단의 거리’(Street of the Knights)로 이어집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중세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하게 돼요.
묵직한 돌 건물과 창문의 아치, 돌출된 발코니, 문에 새겨진 문장들...
그 어느 곳보다도 '유럽 중세가 가장 잘 보존된 거리'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첫 저녁, 그리고 최고의 샐러드
저녁에는 올드타운 커피샵 주인의 추천으로
성 근처의 유명 레스토랑 Mama Sophia를 방문했어요.
- 가리비 구이
- 문어구이와 빵, 올리브유
- 그리고... 그릭 샐러드
처음 먹어본 진짜 그리스 샐러드는
잊지 못할 맛이었습니다.
드레싱은 단순하게도 올리브 오일과 레드와인 비니거랍니다.
특별한 드레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올리브오일의 향과 신선한 재료가
그 모든 차이를 만들어주더라고요.
다음날 브런치도 다시 그곳에서 해결했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진심이 담긴 그 한 접시는 잊히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가는 곳마다 그릭 샐러드를 시켰지만, 이 맛이 나지 않았어요.
올리브 오일의 맛 차이라고 확신합니다.
바람이 시간을 끌고 걷는 도시, 로도스 올드타운
올드타운을 걷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마치 시간을 천천히 밀어내며 산책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돌로 포장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벽돌 담 사이로 무심하게 피어난 꽃과 오래된 나무문, 햇살을 받아 빛나는 돌바닥의 반사광 하나하나가 전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무렇게나 열린 작은 가게 문 사이로는 구리와 은으로 만든 장신구들이 반짝이고,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기타를 연주하더군요.
그 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커피 향이 퍼지고, 오래된 창틀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시선을 붙잡습니다.
낮에는 바람이 유난히 느리게 불고,
밤이 되면 골목마다 노란 조명이 켜지며 마치 영화 세트장 속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요하고,
익숙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
로도스의 올드타운은 그런 도시였습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지금 이 순간을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오래된 돌의 숨결이 있는 동네였어요.
정리하며
로도스섬은 ‘걷는 여행’입니다.
작고 복잡한 골목,
중세의 흔적들,
그리고 골목 어귀의 커피 향까지.
처음엔 낯설지만, 익숙해질수록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마법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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