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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록 - 유럽 여행기

[그리스 여행기 2] 요트 여행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서

by Traveling Kuris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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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요트 여행은 못했지만 하루 요트를 빌려 여행한 날 찍은 요트 사진
결국 하루 요트 여행은 했습니다. 강추입니다.

 

시작은 설렘으로 가득했어요

 

작년, 2024년 1월쯤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그리스 여행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구상은 제가 계획한대로 꽤나 근사했지요.

일주일간 요트 여행을 즐긴 뒤,
낙소스섬(Naxos)에서 또 일주일을 보내는 것.

낙소스에 넓고 아름다운 빌라도 이미 예약을 완료해 두었고,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그런데 어느 날,
막내딸이 전해온 믿을 수 없는 소식.

“엄마, 요트 예약 사이트 zizoo가 파산했대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꿈꾸며 하나하나 준비했던 여행이었기에,  
그 말 한마디가 온몸의 힘을 쫙 빼놓는 듯했어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죠.

“아니야, 뭔가 오해일 거야”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마비된 건 아닐까?”

수없이 부정하며 고객센터에 이메일을 보내고,  
딸과 함께 사이트 리뷰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고,  
우리의 아름다운 요트 여행은 그렇게 현실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계약하고 절반을 지불해둔 상태였기에
어떻게 해야할지 멍해졌습니다.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끝에
결국 포기해야 했지요.

다행히 결제는 애플페이를 통해 환불받을 수 있었지만,
그 순간 느꼈던 상실감은 참 컸습니다.

 

할 수없이 크리스티아나 요트 회사에 직접 전화하여 사정 설명을 하고

예약은 그대로 보존해주기로 했지요.

 

하나 둘 드러난 현실들

 

하지만 진짜 복병은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88세이신 아버지는 건강하신 편이지만,
지팡이를 짚고 아주 천천히 걷는 상황이었고,
조카의 말에 따르면

"흔들리는 요트에 타고 내리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한, 요트 회사 캡틴으로부터 들은 말.

"4월 초엔 바람이 심하게 불 수 있어서
섬 이동을 원하는대로 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산토리니와 낙소스까지 갈 수 없을 수도 있다니,
계획 전체가 위태로워졌습니다.

 

 

마지막 결정타: 아버지의 뱃멀미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버지가 뱃멀미가 심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스 여행을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리셨던 부모님을
뱃멀미 때문에 요트에 태우지 못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결국, 요트 여행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상황도 겹쳤어요

 

아들은 회사 일정상,
딱 4월 초~중순이 가장 바쁜 시기라고
오래전부터 조심스럽게 말해왔습니다.

프레젠테이션, 투자자 미팅, 기획 발표 등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 겹쳐 있었어요.

계속되는 비보에 정말 낙담이 되더군요. 

 

하나씩 무너져 내리는 계획들 앞에서,  
저는 한동안 어떤 여행지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어긋나고 방해받는 일정이라면,  
혹시 이번 여행은 애초에 가지 말라는 신호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아이들의 조심스러운 배려와,  
어떻게든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마음이 느껴졌을 때—  
그 모든 피로와 불안이,  
조금은 따뜻하게 덮이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의 본질은 완벽한 일정표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과 그 순간을 함께하려는 의지에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사실 잠시 "모두 다 그만둘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는데,

그래도 이 모든 악조건에서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하려

애쓰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을 단단히 다잡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의미는
꼭 '계획대로'가 아니라
'함께 하려는 마음'에 있는 걸지도 몰라.”

그리스 도착하신 날이 마친 결혼기념일이라 저녁 식사후 축하하는 모습
우여곡절 끝에 어쨋든 결혼 기념일을 그리스에서 맞이하신 부모님

 

새로운 여행을 그리며

 

요트 여행을 포기한 그날부터,
남편과 저는 다시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섬을, 어떤 순서로 여행하면 좋을까?”

빠르게 검색하고, 지도를 보고,
때론 오래 이야기하며
새로운 여정을 설계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은 아쉽지만,
그 또한 여행의 일부라는 걸,
조금은 배워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도를 다시 펼쳤습니다.  
두 손가락으로 섬과 도시를 이리저리 확대해보며,  
사라진 요트 대신 새롭게 다가오는 경로를 그려 나갔죠.

그날 밤, 저희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와인 한 잔과 함께 달라진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변수 덕분에  
우리는 ‘계획된 여행’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여행’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낭여행의 추억에서 시작된 계획

 
남편은 20대 시절,
친구와 함께 3개월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입니다.
그때 유럽에 빠져든 이후,
수십 번을 유럽으로 날아가
독일과 덴마크에 소중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지금까지도 그곳은 늘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요트여행이 무산되면서,
우리 둘만의 새로운 여행 계획을 짜야 했는데요.
그때 남편이 꺼내든 것은
아주 아주 오래전 그때, 유스호스텔에서 들었던 그리스 여행 팁이었습니다.

 

린도스 유적지

                                                                 로도스섬의 Lindos라는 곳의 유적입니다.

 

아테네, 과감히 패스하기로

 
남편은 단호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에 이미 다녀온 제 두 딸도 입을 모았습니다.

  • "아테네는 하루면 충분해요."
  • "치안도 안 좋고, 생활 환경도 좀 그래요."

아테네 하면 떠오르는 아크로폴리스 판테온 신전을 포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남편의 강력한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아테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로도스섬(Rhodes) 으로 가는 것으로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로도스섬, 크레테섬, 코르푸?

 

 
남편이 그 옛날 터득한 그리스 여행의 핵심은 이 세 곳이었습니다.

  • 로도스섬 (Rhodes)
  • 크레테섬 (Crete)
  • 코르푸섬 (Corfu)

하지만 막상 지도를 펴 보니,
이 세 섬은 서로 방향이 너무 다르고,
이동 시간과 거리를 생각하면
한 번의 여행으로 모두 가기는 무리였어요.
특히 크레테섬은 그리스에서 가장 크지만,
남쪽 끝에 길게 자리 잡고 있어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린도스 해변

로도스섬의 린도스 해변


여행 계획, 남편에게 맡기다

 
예전에는 제가 여행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편이었어요.
여행 책자, 일정표, 지도를 펼쳐가며
최적의 루트를 만들곤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많아서일까요,
남편은 친구나 지인의 조언도 귀담아 듣고,
'척 보면 척' 필요한 선택을 해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여행 계획은 남편에게 맡기고
저는 온전히 즐기는 여행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
 

드디어 출발, 로도스섬으로

총 23일간의 유럽 여행 중,
처음 5일은
남편과 둘만의 시간으로 로도스섬에서 시작합니다.
가족들은 이후 17일간 자유롭게 합류할 예정이었고요.
모든 계획이 틀어졌던 요트여행 대신,
새로운 기대와 함께
그리스의 에게해를 향해 다시 마음을 열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변수는 많았지만 마음속 설렘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잃은 것보다 얻을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리고 우리가 이 여행에서 무엇을 더 사랑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  
그것이 저를 다시 짐을 싸게 만들었습니다.

  •  아테네는 과감히 패스!
  •  로도스섬으로 첫 여행지 확정
  •  여행 계획은 남편에게 맡기고 마음껏 즐기기로
  •  가족과의 만남은 조금 뒤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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