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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록 - 아시아 여행기

발리 결혼식 여행기: 더위에 약한 엄마의 동남아 3주 생존기

by Traveling Kuris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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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약한 엄마의 발리행?
결혼식덕에 동남아 여행 콜!.

 

딸아이 결혼식이 열렸던 발리 비치 글렘핑의 바닷가 석양
발리의 석양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더군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진짜 간다, 발리에… 딸아이가 결혼을 하다니.”

28년 전  
세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와  
영어가 버거운 나날을 버티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짐을 싸면서도,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제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아, 저 아이가 진짜 결혼을 하는구나.’  
‘내가 이 결혼을 정말 축하하고 있긴 한 걸까?’  
기쁜 마음보다 먼저, 놓아줘야 한다는 슬픔이 살짝 더 빨리 찾아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누구보다도 딸을 사랑하기에 생기는 복잡한 감정이겠죠.  
정말이지, 더위보다 더 어려운 건  마음의 적응이었는지도 몰라요.

그 막내가 이제 결혼을 하고,  
그 결혼식에 초대받아 해외로 향하고 있는 지금—  
감정이 벅차기도 했지만,  
솔직히는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더위와 추위에 모두 약한 편이에요.
그중에서도 ‘더위’는, 제게 늘 큰 시련처럼 다가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체중이 부쩍 늘면서 땀을 흘리는 양도 많아졌어요.
한여름, 볕 아래 몇 걸음만 걸어도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매년 여름의 알래스카는 마치 피난처 같아요.
서늘한 바람이 이마의 열기를 식혀주고,
한낮에도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그곳에서
저는 다시 숨을 쉬는 기분이 들곤 하죠.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겨울에만 비가 내리고,
나머지 계절은 늘 바짝 마른 공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건조한 환경에 익숙한 제겐, 남아시아의 습도는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무덥고 습한 나라로 여행을 간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설렘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몸이 먼저 긴장하는 일이에요.

 

 

 

2019년, 막내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싱가포르 지사로 옮긴 뒤
저를 초대했어요.

오랜만에 떠나는 싱가포르,
그리고 그 길에 함께 들른 쿠알라룸푸르,
그리고 홍콩.

이 세 도시에서 저는 매 순간, 땀과 싸워야 했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길 한복판에서,
자꾸만 헝클어지는 머리를 정리하다가
혼잣말처럼 "다신 안 올 거야"를 되뇌기도 했죠.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땐 정말 진심이었어요.

 

그런 제가, 다시 한 번 남아시아로 향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3주 동안이나.
이번에는 사연이 조금 특별했습니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그 딸아이가,
거기서 만난 미국인 남성과 약혼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결혼식은 무려 발리에서.
남편이 될 사람의 가족은 달라스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오고,
우리 가족은 한국, 미국, 뉴질랜드, 호주에 흩어져 있었으니,
세상의 여러 방향에서 발리로 향하는
이동의 물결이 시작된 겁니다.

 

딸과 신랑의 학창 시절 친구들은 미국에서,
일하면서 사귄 친구들은 싱가포르에서
하나둘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 뜨겁고 습한 섬으로 향한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후끈한 공기와 뺨을 감싸는 습도가  
바로 “여긴 발리입니다” 하고 말해주는 듯했어요.  
입구에는 현지 꽃 장식을 든 환영팀이 있었고,  
딸과 예비 사위가 밝은 얼굴로 맞아주었죠.

그 순간만큼은 더위도, 땀도, 불편함도  
잠시 잊고 싶었습니다.  
내 아이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그 자리—  
저도 그 풍경 속 주인공이자 증인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내 마음도 조금씩 발리의 온도에 적응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딸아이가 저 멀리 걸어가며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마음 한쪽이 찡해졌습니다.  
저를 떠나 독립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딸의 모습이  
이 낯선, 뜨거운 땅 위에서 더 또렷하게 보이네요.  
그 순간 저는 알았습니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저 역시 ‘엄마’라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작은 의식이었다는 걸요. 

 

딸아이 결혼식의 한 장식
결혼식 사진 미리 투척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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